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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K-선비한복대회]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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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강의나라
조회 726회 작성일 25-08-10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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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高價)의 한복과 메이크업으로 치장해 맵시를 뽐내는 일반 한복대회가 아니라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정신으로 선비들의 풍류를 뽐내고 참선비들의 인성(人性)을 계승해 가는 [K-선비한복대회]를 말한다.

  이러하듯 꾸밈없는 수수함과 선비다움을 뽑내는 자리인지라 [K-선비한복대회]가 주는 메시지는 아주 각별하다.
  위대한 인물에 대한 현창사업을 살펴보자면 먼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현창과, 원불교 창시자 소태산 박중빈 거사를 거론해 볼 수 있다. 결코 [덕수이씨 종친]이나 [밀양박씨 종친]이 나서지 않는다. 이 두 인물은 이미 난중일기와 원불교 교리를 비롯해 원리가 튼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수은 강항만큼은 크게 다르다. 당시 시대상이 그러하듯 적국에 끌려갔기에 강항은 [스스로 죄인이다]며 [건거(巾車)]에 갇히고 급기야 영광 유봉 땅에 임금의 칙명을 사양하고 은거하고 말았다. 그나마 그는 선비로서 마땅한 도리를 알기에 후학들을 양성하기 위해 은둔생활을 자임했던 것이다.
  당시는 치열한 사색당파 싸움에 주자학의 정통 유학 외에는 모두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뒤집어 씌워 척결하는 시대였기 때문이다. 실용성에 입각한 양명학마져도 받아들이지 않고 죄없는 참선비들을 때려 죽이는데 우리 편이 아니면 적으로 몰려 죽을 수 밖에 없는 시절이었다.
  이 무렵 용기있는 수제자 동토 윤순거가 나서 [우리 스승은 결코 죄인이 아니다]라며 [간양(看羊)]으로 바꾼 혁명적인 발상으로 지금 강항은 그의 아호(雅號)가 설명하듯 긴 잠에서 스스로 깨어나고 있는 중이다.
  더 놀라운 사건이 1599년 일본에서 벌어진다. 강항보다 6살이나 연상인 순  수좌(후에 등원성와, 후지와라 세이카로 불림)가 매일 조석으로 의관을 정제하고 책을 읽는 강항의 모습에 반해 버리게 된다. 그러한 순수좌는 강항에게 “선비한복(심의(深衣))을 어떻게 짓습니까?“라고 물어 와 한 땀 한 땀 전수받기에 이르러 1599년 봄 어느 날 순 수좌는 역사적 운명으로 승려복을 벗어 던지고 선비한복(심의)을 입고 나타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덕천가강)앞에서 시강(侍講)을 개최하게 된다.
  이토록 [선비한복(심의)]은 신유학(강항휘초)과 제례문화(공자묘)와 함께 왜의 선각자인 순 수좌에 의한 이러한 변신의 원동력으로 [데라꼬야 학당]을 일본 열도에 수천 개를 설치하게 된 계기가 마련하게 되어 드디어 일본인들도 배움의 갈증을 구하게 된 것이다. 이러한 순 수좌의 나비효과가 이른바 왜의 근대문화 혁명의 시발이 된 것이요, 왜의 문화 르네쌍스 시대의 부흥기를 가져오게 한 동기가 된 의복이 선비한복(심의)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옷이 날개라고 말한다. 국민의 치안을 책임진 경찰이나 나라를 지키는 군인의 제복은 정신을 쇄신하는 것으로 그 시대를 이끌고 바꾸게 하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또, 칼(무신(武臣))보다 강한 것이 학문(문신(文臣))이라 말할 수 있다. 당시 칼이 강했던 왜는 조선의 신유학을 받아들임으로 근대 일본이 명치유신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의 일본이 존재할 수 있었음은 명명백백한 사실로 한국과 일본의 학계에서 증명하고 있다.
  이러한 다수의 일본인들을 위해 문화의 전도사가 된 강항, 그네들이 [해동 강부자海東 姜夫子]라 불리우는 수은 강항을 위해 매년 개최되는 K-선비한복대회는 그야말로 지배계층인 무사(사무라이)들에게 당하고만 사는 다수의 선량한 일본 백성을 생각하고 배려(오모이 야리)를 위한 대회로 자리 매김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대한민국의 武의 영웅이 충무공 이순신이라면 文의 영웅은 수은 강항으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밀물처럼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